5년 전에 프듀2가 대한민국을 휩쓸었다. 난 그때 당시 미국에 있어서 그 열풍을 전혀 실감하지 못했는데 대학동기들 말에 따르면 우리 학교 근처 고등학생들이 우리학교까지 와서 자기 최애를 홍보하고 뽑아달라고 말을 하고 갔다고 했다.
내 동기들은 너무 유난이었다는 식으로 말했지만 나는 솔직히 귀여웠다. 한국 청소년들이라면 다 한번씩 팬덤문화를 겪을 수 밖에 없는데 그렇게 이왕 겪는 김에 그렇게 열심히 파고든다면 어떻게든 나중에 재미있는 추억으로 남을 것 같아서다.
그때 아마 티비의 주 시청층인 3040 여성들도 많이 유입되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이러한 사실에 별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그 3040대 들이 구체적으로 하는 짓들을 보자니 그 때 당시에 눈쌀이 찌푸려지는건 사실이었다. 일단... 그들은 일명 커뮤세대로 인터넷 커뮤니티를 정말 많이 하는 집단이고, 또 지금 바로 쌍욕을 받는 10-20대들과는 다르게 은근히 돌려까기, 계속 대댓달아가면서 이길 때 까지 싸움질 하기에 특화된 집단이다. 그래서인지 내가 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갑자기 3040 유입이 늘더니 맨날 프듀로 싸움판을 만들어서 너무 짜증나서 결국 그때 커뮤니티 자체를 그만두게 되었다. 뭐 결과적으로 좋은 일이지... 그때 자기들끼리 '00대인 나도 0000덕질한다~' 이런식으로 댓글 가득 우르르 떠들고 다니는게 묘하게 쪽팔렸다.
또 '30대는 아직 너무 어린나이다!' , 어린 남자연예인들 오빠라 부르면서 '잘생기면 다 오빠다!' 이러면서 지들끼리 꺄륵대는 것도 묘하게 수치스러웠다. 30대가 정말 어린나이인가? 내주변 30대들은 다 엄청 어른이다. 생각하는 것도 정말 성숙하고 똑똑하고 능력있고 취미도 멋있고 아무도 연예인에 관심 없다. 그래도 그때는 연대적 페미니즘을 하자는 명목하에 그냥 나 혼자 불쾌하고 말았다. 그런데 오늘 충격적인 장면을 보고 그 때 느꼈던 불쾌함이 절대 정당하지 못한 감정이 아님을 실감하게 되었다.
오늘 본 충격적인 장면은 정말 쭈굴쭈굴하신 아주머니가 남자아이돌 알페스 팬픽을 쓰고 있는 장면이었다. 나도 정말 보고싶지 않았는데 내가 오늘 노트북하러 간 카페가 사람들 공부하라고 벽에 책상을 학교처럼 다닥다닥 붙여놓는 좌석이 있는데 그 분이 내 앞에 앉아서 어쩔 수 없이 볼 수 밖에 없었다... 어떤 남자아이돌 그룹인지 다 이름이 보였고 심지어 포스타입에 업로드하는 것까지 보고 말았다. 정말 40-50대 사이에 있는 전형적인 아주머니 그 자체였고, 또 연예인은 이계인 정도나 알것 같은 인상이었는데 인기 남자아이돌 그룹으로 그런 얘기를 쓰다니..... 원래 백번 페미니즘에 양보해서 여자가 나이가 뭐가 중요해! 나이 많으면 덕질도 못하냐!라고 넘기려 했지만 솔직히 솔직히 충격적으로 한심하고 괜히 쪽팔렸다.
딱 이런옷을 입고 있었고 약간 그알 이수정 교수님을 닮았는데 그런 분을 닮아 놓고 그렇게 팬픽이나 쓴다는게 너무 한심하고 추했다. 이수정 교수님은 범죄심리학에서 권위자잖아;;;
노트북도 강제적으로 보게됐는데 두툼한 검은색 노트북에 알록달록한 사람얼굴이 들어가 있는 스티커들이 주렁주렁 달려있었는데... 아우.....안그래도 알페스 극혐인데 그런사람이 알페스를 쓴다니...
아무리 나이는 신경쓰지 않고 젊게 사는게 요즘의 트렌드고 진보적인 방식이라 해도 나이엔 그 나이에 맞는 생활양식들이 있는 것 같다. 흔히 어릴 때 대중문화에 빠졌다가 나이들 수록 대중문화에 관심이 없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건 어릴 때는 경험이 없고 아는게 별로 없어 비교적 접근하기 쉬운 티비나 인터넷을 주로 가지고 놀게되고 그로인해 대중문화를 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서 다양한 문화를 접하고 많은 걸 배우면서 세상엔 대중문화보다 훨씬 재밌고 생산적인 것들이 많다는 걸 깨닫게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니면 대중문화는 그냥 간단히 소비하면서 자기계발을 하는 경우도 많고....
이렇게 부정적인 생각을 하다보니 기억이 내가 예전에 인턴했던 회사에서 본 많은 분들이 떠올랐다. 연예인을 많이 접하는 직업이라 그런가? 그 분들 중 특정 부서의 몇몇 분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정말 주변에서 '왜 저래' 이럴 정도로 주책맞았다...
그중 나와 같은 부서였던 팀장님은 아이돌을 오래 좋아한건 아니지만 프듀로 어떤 아이돌을 입덕하셨는데 정말 오두방정이 심하셨다.
'머글이었고 지금 잘나가는 커리어 우먼인 눈 높고 까다로운 자신의 마음을 낚아챈 내 완벽한 00'라고 주책떠는 것도 모자라 가끔 일할 때 자기 최애를 개입시켰다. 당연히 맨날 빠꾸먹어서 그 아래 사람들이 수습하느라 힘들었다. 일도 제대로 안하고 맨날 나한테(제일 만만하고 어렸던 나...) 자기가 지금 자기 최애를 위해 일도 팽개치고 얼마나 '발칙'한 짓을 하는지 존나 자랑했다... ㅅㅂ 회사컴으로 네이버 동영상 스밍하고, 우튜브 스밍하고 나한테도 스밍하라하고... 그 분 뒤에서 욕하는 남자동기 있었는데 그때는 한남 ㅂㄷㅂㄷ 이러면서 맞장구 안쳤는데, 지금 미안하다... 걔는 그냥 아주 당연하고 맞는 말을 할 뿐이었는데...
아무튼 카페에서 늙은 팬픽작가를 보고 충격을 받아 구글로 열심히 검색을 하니 의외로 나이를 엄청 먹어서까지 아이돌에 미쳐 정신 못차리는 사람들이 정말 많더라고...심지어 30-40대인데 홈마,사생짓이나 하고 있는 사람도 있고;;; 또 결혼했는데도 아이돌에 과몰입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남편이 콘서트 보내줬다고 자랑하고 또 아들램이랑 콘서트 간다고 자랑하고, 딸램이랑 콘서트 간다고 자랑하고...
내 주변 30-40대들은 다들 능력면에서도 탁월하고 또 굉장히 멋있는 취미를 가지신분들이 많다. 어떤 분은 수묵화를 그려서 전시회를 하기도 하고, 또 와인 콜렉터도 있고, 지우개 도장을 파셔서 인스타에 유명해지신 분도 있다. 테니스를 선수급으로 잘치시는 분도 있고, 노트북을 조립하시는 분도 있고. 딱히 취미가 없더라도 시사상식이 엄청 풍부하셔서 같이 이야기하면 정말 너무 재밌고 우와하고 배울 점이 많은 그런 분들... 모두 다 여성이고 볼때마다 정말 존경스럽고 나도 저렇게 되어야지 하는 마음이 컸다. 그런 분들하고 더 대비되서 더더욱 우습고.. 초라하고...
그리고 그 케이팝을 좋아했던 분들은.. 뭐 그때 당시에는 그냥 나이 상관안쓰고 자기 좋아하는 거 하는 자유로운 사람으로 대충 올려쳤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사실 마음 속으로 한심 디나이얼을 겪고 있었다. 입만 열면 연예인 얘기에 아는게 아이돌 가십거리밖에 없는 그분들은 객관적으로 너무 한심하다.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면 정말 더더욱 소름끼칠만큼 한심하다.... 거기다 그분들은 심지어 다 자기관리도 못하시는지 오동통한 몸집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돌 입장에서도 아이돌이란 뜻 그대로 어린 10대 친구들한테 우상적으로 사랑받길 원하지 자기보다 열 살은 많을 것 같은 아줌마들한테 아들램 기믹으로 사랑받는건 조금 부담스러울거다...거기다 누나라고 불러달라 할꺼 아냐.. 나이많은 남자가 오빠로 불러달라하면 나는 주먹으로 얼굴 존나 치고 싶을만큼 싫은데 남돌들도 그만큼 싫지 않을까?
제작년 부터 케이팝이 시들해지고 점점 모르는 아이돌이 늘어가고, 비아이돌 가수의 노래들이 좋아지고, 콘서트도 비아이돌 가수들과 뮤지컬만 가서 내 열정이 많이 죽었나 싶었는데 아주아주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나이 먹으면 연예인, 특히 아이돌문화로 부터 졸업하는 것이 객관적으로 맞는 길이다... 늙어서까지 덕질하면 정말 정말 추하고 한심하다.
앞으로도 이 시들해진 마음을 가지고 현생에 집중해 운동 열심히하고 취미로 배우는거 열심히 배우고 내 주변사람들한테 잘하면서 살아야겠다....오늘(지금은 새벽 두시정도 됐으니 어제) 본 그분을 계속 떠올리면서 나는 절대 저렇게 되지 말고 저런사람들이랑 친하지도 말고 살아야지.. 올려치지 말고 속으로 한심하다고 생각하고 살아야지.. 라고 결심하게 되었다.
30대가 되었을 때 머릿속에 든게 아이돌뿐이면 스스로가 너무 딱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30대부터는 우리는 아직 어리다고 개소리 할게 아니라 어느정도 나이를 먹었다는 자각을 가지고 현실에 발 딱 붙이고 뇌에 힘주고 살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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